작업 노트
기억(Souvenir)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사고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화자는 나 자신의 큰 기억(Mémoire)를 제공하여 보는 이들이 각자 개개인의 작은 기억(Souvenir)으로 이어 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전체 기억(Mémoire)를 보여주기 위해, 나 자신에게도 작은 기억일 수 있는 사물을 객관적인 시선, 사실적 묘사를 배제 시켜 버린다든지 어떤 부분은 극대화시켜 자신만의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감상자가 촉매제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개인의 기억들을 현재로 끌고 와 그들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일종의 기억의 샘(Mémoire)에서 특정 기억의 물고기(Souvenir)를 낚는 방식이다.
이 화가의 시선(물리적인 시선-화면에 옮기고자 하는 순간)을 감성적으로 도치시키기 위하여 때로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배제, 주관적인 감성들을 포함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화면에 그려나갈 이 물체(Object)는 화가 자신의 개인의 사물에서 공적인 사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 일들은 붓의 필치를 이용하기도 하며, 색감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집중시키기 위한 화면 구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매번 지나가는 공원, 혹은 출근 길에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있다고 하자. 날씨, 계절의 변화에도 깊이 뿌리 박힌 습관이라 인식하지 못할 개인의 장면 혹 시선이다. 이러한 잠재 기억 속에 깃들여진 것들을 끌어 낼 수 있을 법한, 혹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화자뿐 만 아니라 관객 또한 역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한 번쯤은 경험했을- 화면을 보여준다.
그림을 그리는 기법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한국의 전통 채색 방식이다. 채색을 위한 닥종이(Jangji: Maulbeerbaumpapier), 장지는 한국 채색 물감(Bunchae: Koreanisches Pigment)가 색감의 층(Farbschichten)을 나타내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 수간 채색의 특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화면 안에서의 수 많은 다양한 색감의 층들을 통해 최종 목표의 색 톤에 도달하게 한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전에 칠했던 색감이 완전 마른 뒤에 다음 색감을 칠해야 색감이 섞이지 않아 각자 고유의 색을 유지하며 레이어(Farbschichten)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결과 화면 안의 색감은 혼탁함이 덜하고 깊이가 있는 색으로 보여진다.
작업의 단계에서 나오는 물리적 방식과 주관적 감성 사고는 대개 그리고 있는 행동의 순간에서 나온다. 이것은 오히려 가장 평범한 곳에서 새로운 시각의 확장과 연상작용이 일어난다. 이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고, 그 영향 관계가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지각은 운동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기존의 습관적으로 인식하던 대상을 삭제하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대상의 잠재된 특징과 깊이를 불러옴으로써 대상을 새로이 대체할 수도 있다. 대상에 대한 새로운 마주함은 일상 속에서 가장 평범한 부분에서 매 순간 발현 될 수 있다.